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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써야 하는 이유 - by 문화작가 방미영

by 청문단 2013. 11. 18.

 시를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독자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날 인터넷에 나온 글을 읽고 한참 서성였습니다. 2014년 올해는 이미 절판이 된 《잎들도 이별을 한다》 후속 편 발간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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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빚어 쓰는 시
[시를 노래하는 시 36] 방미영, 《잎들도 이별을 한다》

 


- 책이름 : 잎들도 이별을 한다
- 글 : 방미영
- 펴낸곳 : 을파소 (2000.9.1.)
- 책값 : 5000원

 


사진기가 처음 태어난 뒤, 적잖은 일본사람은 한국으로 찾아와서 사진을 찍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나라를 괴롭히려는 뜻도 있었으나,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웃나라’ 삶자락을 ‘이웃’으로 받아들여 사진으로 담곤 했습니다. 이 흐름은 일본제국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고이 이어집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하는 일본사람은 어김없이 있지만, 착하며 예쁜 동무로 지내면서 ‘착하며 예쁜 이웃나라’인 한국을 생각하는 일본사람 또한 어김없이 있어요.


이웃을 착하며 예쁜 벗님으로 여기는 이들은 글을 쓸 적에는 ‘착하며 예쁜 벗님 이야기’를 쓰고, 사진을 찍을 적에는 ‘착하며 예쁜 벗님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결 그대로 쓰는 글이고 삶자락 그대로 찍는 사진이니까요.


글쓰기는 ‘나하고 동떨어진 남’을 구경하면서는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진찍기 또한 ‘나하고 등진 남’을 구경하면서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글쓰기도 사진찍기도 ‘나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웃’을 생각합니다. 나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이웃을 느끼고 동무를 알 때에는, 나 스스로를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동무를 아끼는 마음은 나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자라납니다. 스스로 내 삶을 일구는 임자가 될 때에는 ‘내 모습’을 글로 기쁘게 나타내고 사진으로 예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사진기 없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슬기롭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이 사진기부터 장만하고,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이 아름답지 못하기에, 겉보기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은 만들지만, 정작 속살이 아름다운 사진을 빚지는 못해요. 겉이 그럴듯하대서 삶이 아름답지 않거든요. 속살이 아름다운 삶일 때에 비로소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진을 이루거든요.


.. 밤사이 낙엽들이 / 뒷마당으로 몰려와 / 서로의 체온을 부비며 / 추위를 견디었나 봅니다 / 맨 먼저 발 밑에 와 닿는 / 잎 하나 / 바스스 부서지더니 / 바람에 실려 떠났습니다 .. (잎들도 이별을 한다)


글은 쓰기도 하고 짓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 ‘글쓰기’이고, 글을 지으면 ‘글짓기’입니다. 꾸밈없이 내 삶을 돌아보면서 찬찬히 적바림할 수 있을 때에는 글쓰기라 할 만합니다. 내가 이루고픈 꿈이나 사랑을 가만히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빚을 때에는 글짓기라 할 만합니다.


곧, 삶을 살필 수 있을 때에 글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삶을 어떻게 누리느냐 하고 돌아볼 수 있을 때에 글을 어떻게 누리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되든 글짓기가 되든, ‘삶쓰기’요 ‘삶짓기’입니다. 삶을 수수하게 누리는 나날일 때에는 ‘삶쓰기’를 하는 ‘글쓰기’입니다. 삶을 내 깜냥껏 새롭게 일구는 ‘삶짓기’로 나아가면서 ‘글짓기’를 이룹니다. 쓰기를 하든 짓기를 하든, 스스로 삶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내 마음이 드러나는 글이 달라져요.


그런데, 오늘날 이곳저곳에서 한다는 ‘글쓰기 교육’은 거의 모두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논술과외에 치우칩니다. 삶을 말하지 못하고, 삶을 다루지 못하며, 삶을 즐기지 못해요. 슬픈 모습이요, 메말라 비틀어지기까지 하는 모습이라고 느껴요. 더구나, 어른들 읽으라고 나오는 글쓰기 길잡이책을 보면, ‘글 쓰는 즐거움’을 하나도 안 다뤄요. 글재주랑 글솜씨 이야기만 가득해요. 껍데기를 북돋우라 하는 ‘글쓰기 길잡이책’만 넘쳐요.


.. 이별의 아쉬움 때문만은 아닌 듯 /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내게 / 미루나무 심어놨다고 / 꼭 부러와야 한다고 배시시 웃는 그녀 / 못이기는 척 단숨에 달려와 / 나는 지금 그 미루나무 아래에 서 있다 / 바람아 / 오늘은 날 찾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 (숲속의 하얀 집)


옷깃을 스치는 사람입니다. 옷소매를 스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옷자락을 스치기도 하는 사람이에요. 머리카락 나풀거리며 옷깃이 스칩니다. 저잣거리 북적거리는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옷깃이며 옷소매며 옷자락을 스칩니다. 그저 지나치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남도 나도 없는 한몸이거나 이웃입니다.


참말 서로 어떤 이음고리가 있어 옷깃을 스칠까요. 참말 서로 어떤 매듭이 있어 옷소매를 스칠까요. 참말 서로 어떤 실타래가 있어 옷자락을 스칠까요.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릴 적하고, 손전화 같은 기계로 글자락 들여다볼 적은 사뭇 다릅니다.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고를 때랑, 인터넷을 뒤져 책을 살필 때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도, 두 눈 마주보는 자리랑 셈틀 화면 들여다보는 자리는 사뭇 달라요. 셈틀 화면으로 오래도록 수다를 떤다 하더라도, 저잣거리 북새통에서 옷깃을 스치는 사람보다도 ‘멀리 떨어진’ 셈일 수 있어요.


.. 서울 하늘 밑에서의 그리움은 / 궁상맞다 / 빌딩과 빌딩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히고 / 바람이 부는 날에는 / 사람들 발에 짓밟혀 / 지하철 환기통의 담배꽁초처럼 / 미니스커트 속만 바라보며 / 후끈거린다 .. (그리움 1)


내 마음을 돌아봅니다. 내 마음은 얼마나 따스하거나 시원한가 돌아봅니다.


늦도록 뛰놀고픈 두 아이하고 복닥이다가, 두 아이를 한팔씩 안아서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두 아이한테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말이 늦는 두살배기 사내아이도 이제는 ‘하늘’이라는 낱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별’이라고 하면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늦은 밤이나 깊은 밤에 뭇별잔치 누리는 일이 더없이 기쁩니다. 그냥 마당에 내려서기만 해도 별잔치예요. 수많은 별들이 펼치는 새별잔치이기도 하고, 미리내잔치이기도 합니다.


겨울바람은 차갑다 할 만하지만, 방에서 땀 나도록 뛰놀던 아이들로서는 시원하다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아이들과 한참 뛰놀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서니 제법 시원합니다.


그래, 이 겨울에 찬바람을 시원하게 느끼면서, 나부터 내 마음자락 시원스레 보듬을 수 있으면, 내 삶 한 자락은 참 시원스럽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따스한 마음 되도록 다스리고, 어느 모로 보면 시원한 마음 되도록 다독인달까요.


.. 여름이 되면 / 나는 / 미루나무 끝에 걸쳐 있는 / 하늘이고 싶다 .. (여름 미루나무)


한겨레 살아가는 이 나라 들판을 둘러보면, 들짐승이 거의 몽땅 사라집니다. 너무 마땅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고속도로에 고속철도에 공장에 골프장에 발전소에 송전탑에 관광단지에 짐승우리에 …… 온갖 시설을 시골자락이랑 숲자락에 때려지어요. 시골과 숲을 ‘때려부순’ 다음, 갖가지 도시 문명을 ‘때려짓습’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이랑 숲이 죽는 줄 못 느끼거나 모릅니다. 도시는 워낙 시골이랑 숲을 밀어 없앤 다음 지었거든요. 시골이랑 숲은 일찌감치 죽었어요. 어른들은 지난날 모습을 잊고, 아이들은 지난날 모습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즈음 시골사람도 시골이랑 숲이 죽는 줄 못 느끼거나 몰라요. 아직 시골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조차 하루빨리 시골 떠나 도시로 가고프다 여기거든요.


그런데, 우리 식구는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들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 식구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로 찾아든다지만, 아직도 시골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보다 훨씬 적어요. 시골 아이들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몽땅 시골 떠날 생각만 그득해요. 왜 그런고 하면, 시골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모두 ‘도시 얼거리’에 맞추어 짤 뿐더러, ‘도시에서 돈을 벌며 할 일’만 가르쳐요. 시골에서 즐겁게 뿌리내리며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 보듬는 일을 보여주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요.


.. 당신을 보며 알았습니다 / 내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 당신은 언제나 한자리에서 / 사랑합니다 .. (나무 사랑)


생각과 생각을 그러모아 봅니다. 이제 한국땅에 들짐승이라 할 들짐승이 거의 사라진 판인데, 다른 한편에서 생각한다면, 이 한국땅에는 들짐승과 함께 ‘착한 사람’도 사라집니다. 멧짐승과 함께 ‘맑은 사람’도 사라집니다. 물짐승과 함께 ‘참된 사람’이 사라져요. 그리고, 시골짐승과 나란히 ‘고운 사람’마저 사라져요.


제도권 울타리가 무시무시하게 높습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이 신분증 구실을 합니다. 은행계좌가 계급 노릇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야 맙니다. 사람한테서 사람을 못 느끼고야 맙니다. 사람빛을 살피거나 사람내음을 맡거나 사람결을 어루만질 만한 사람이 차츰 사라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기에, 사람과 사람이 어깨동무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사라지고, 지식과 정보가 흘러넘칩니다. 이야기는 죽고, 지식과 정보가 춤춥니다. 이야기는 힘을 잃으면서, 지식과 정보가 우뚝 섭니다. 책 이야기 말하는 사람이 시나브로 줄면서, 책 지식과 책 정보 말하는 사람만 곳곳에 부쩍 늘어납니다.


.. 전라도 순천 땅을 / 야무지게 박차고 시작한 / 고단한 타향살이에도 /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 ―남에게 줄 때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 ―더 좋고 반듯한 것을 줘야 한다 / 희망을 꿈처럼 먹여주신 / 어머니 // 서른 아홉 어머니가 / 내 거울 앞에 앉아 / ―괜찮다 잘 살아왔다 / ―부족함은 더 메우면 된다 / 얼굴을 부비신다 // 사랑이 목마를 때 / 울고 싶을 때 / 웃고 싶을 때 .. (서른 아홉 여인의 비가―아, 어머니)


방미영 님 시집 《잎들도 이별을 한다》(을파소,2000)를 읽습니다. 싯말을 하나하나 아로새기고 보니, 싯말이란 생각을 빚어서 읊는구나 싶습니다. 노래말도 이와 같겠지요. 그림말도 사진말도 만화말도 모두 이와 같겠지요.


사랑말도 믿음말도 꿈말도 모두 생각을 빚어서 읊으리라 느낍니다. 가르치는 말도 배우는 말도 한결같이 생각을 빚어서 나누겠구나 싶어요.


생각을 빚지 않고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 생각을 빚을 때에 비로소 내 말문이 열리고 마음문이 열리며 삶문 또한 열리겠다고 봅니다.


.. 한국프레스센터 19층 / ‘한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로 / 심포지엄이 열리고 / 환난의 책임자와 난국의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데 / 왜 내 시선은 자꾸만 / 인왕산에 머무는 것일까 .. (인왕산)


언제부터였나 ‘10대 일간지’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아마 이제는 이런 말을 안 쓰지 싶은데, ‘10대’가 되든 ‘20대’가 되든,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만 들먹이지, 시골에서 나오는 신문은 들먹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본다는 신문만 다루지, 더 적은 사람이 보는 신문은 다루지 않아요.


대통령을 뽑건 국회의원을 뽑건 누구를 뽑건, 이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싹조차 아직 안 텄다 할 만하기 때문에, 모든 후보를 골고루 살피면서 가장 알맞다 싶은 사람한테 한 표를 주기 어렵습니다. ‘군소 후보’란 있을 수 없어요. 모두 똑같은 대통령 후보요 국회의원 후보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지 ‘더 뛰어난 사람’과 ‘안 뛰어난 사람’이 따로 없어요.


운동경기 하나를 치른다 할 적에, 손님이 더 많이 모이는 곳이 더 ‘좋은’ 데라 할 수 없습니다. 구경꾼 몇 없는 채 운동경기를 치른대서 ‘재미없지’ 않습니다. 프로스포츠이건 아마스포츠이건, 땀을 흘리며 살을 맞대는 삶을 누리자는 운동경기이지,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운동경기는 없어요.


그러니까, 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써서 어느 대회에서 1등상 2등상 따위로 금을 그어 상패와 상금을 내려주는 일은 덧없습니다. 문학에는 등수도 순위도 계급도 차례도 신분도 없습니다. 문학뿐 아니라 경제와 정치와 문화와 복지와 우리 사회 모든 곳에는 ‘숫자’가 없어요.


‘몇 학년 몇 반 몇 번 아무개’가 아닙니다. 그저 ‘아무개’입니다. 사람인 아무개입니다. 시는 시요, 시집은 시집입니다. 이름난 작가 시집과 이름 안 난 작가 시집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으로 읽는 시일 뿐입니다. 마음을 담아서 쓰고, 마음을 펼쳐서 읽는 시일 뿐입니다.


.. 섬은 바다 한가운데 떠있으면 / 섬이 되고 / 바다는 / 섬과 섬 사이를 흐르면 / 그만인데 .. (우리가 바다로 떠나지 못하는 이유)


새근새근 숨소리 내며 잠자는 식구들 곁에서 글 한 줄 씁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식구들 곁에서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비질을 합니다. 겨울바람 고요히 잠든 시골 밤나절 고즈넉히 즐깁니다. 석 달 지나 새봄 찾아들면 이 깊은 밤에 밝은 노래 부르는 멧새 노랫소리를 듣겠지요. 넉 달 지나 개구리 깨어날 즈음부터는 이 깊은 밤에 맑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을 테고, 다섯 달 지나 제비가 집 고쳐 새끼를 깔 적에는 제비 노랫소리를 들을 테며, 여섯 달 지나 풀벌레 흐드러지게 알을 까서 새 벌레 태어날 때에는 풀벌레 노랫소기를 듣겠지요.


고운 길을 헤아리면서 고운 삶을 짓습니다. 고운 꿈을 추스르면서 고운 말을 짓습니다. 내 넋을 곱게 보살피면서 내 손길에 고운 사랑 묻어나도록 북돋웁니다. 4345.1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