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모 공기업의 트러스전시회 최종 장소로 용산 역사를 선정, 제안해준 적이 있다. 문화콘텐츠가 관객과의 소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과감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 번도 유동인구로 복잡한 광장 대합실 한복판을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한 적이 없었던 담당자는 난색을 표명하며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그러나 ‘역내 전시라 이동인구의 동선과 시선에 절대 제약을 주지 않게 트러스대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동선에 방해되지 않게 전시 작품을 섹션별로 나눠 트러스대와 트러스대 사이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할 것이다’ 는 등등 전시 제안서를 들고 설득의 설득을 해 8일간의 전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테이프커팅식이 있던 날 복지부동의 역내 담당자는 안도의 미소였는지 내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회가 끝날 즈음 서울역 관계자는 서울역에서 연장전시회를 할 수 없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용산역은 역내 전시를 통해 문화역사라는 또 다른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자동차 전시 등등 굵직한 문화이벤트 유치로 수익과 문화 양쪽의 키워드를 다 잡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현장에서 직접 뛰며 문화를 움직이는 사람과 책상에서 펜으로 문화를 움직이려는 사람과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문화 소통의 성공 사례로 남게 되었다.
문화는 소통이다. 행정적 발상을 가지고 문화를 접근하고 해석한다면 문화 소통을 통한 수요자의 충족을 이룰 수 없다. 문화가 소통 없이 전시행정의 일한으로 밀려난다면 문화산업시대에 세계 속의 한국을 꽃 피울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영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리면 공항 벽면 가득히 붙어 있는 웨스트엔드 공연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문화 소통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하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문화강국을 만드는 원동력은 적극적으로 문화소비자를 구애하는 노력일 것이다.
얼마 전 필자는 문화예술행정경영, 문화예술콘텐츠를 전공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교류하다가 서울이 과연 걷기 편안한 거리인지에 대해 즉석 논의를 했다. 몇 가지 의견들이 오갈 때 덕수궁 앞에서부터 도심문화의 접근성에 대한 체험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해 몇몇이 동행한 적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돌아서 정동 길을 걷고 있으니 어디선가 ‘광화문연가’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광화문연가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만난 노래시비 앞에서 짧은 묵도와 함께 가슴이 시원해지도록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정동 길을 돌아 서울시민들 70%의 자발적인 유물기증으로 전시되었다는 역사박물관을 거쳐 서울 수도의 상징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화예술인의 열정과 환희의 무대인 세종문화회관이 최근 주변 공연장들을 연계한 공연예술 특화지구 '세종벨트'를 추진 중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세종문화회관 주변 문화 공간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문화의 장이 취약하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세종벨트가 미국 브로드웨이처럼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세종로에 흩어져 있는 공연장들을 문화 벨트로 묶는다면 각종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은 확실하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소통하는 모든 대상으로 하여금 발광하고 동참하여 창조하게 한다면 반드시 자연발생적인 문화벨트가 이어질 것이다.
요즈음 대학로나 인사동에서 삼청동과 북촌으로 문화예술축이 옮겨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미술특구와 삼청동과 가회동의 북촌마을로 이어지는 문화특구가 도심문화벨트의 축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보폭에 맞게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갤러리 중심의 문화와, 좁은 길을 따라 형성된 북촌은 올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한국적인 멋을 한껏 담고 있다. 최대한 편안하고 느린 걸음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들추지 않고도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저마다 독특한 문화가 색다른 볼거리를 안겨준다. 더욱이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 섬에서 만난 좁은 골목길을 연상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북촌 길은 도심문화의 백미다.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느껴보지 못한 카프리 섬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듯이, 낯선 나라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문명의 화려함이 아니라 어깨가 스쳐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덫 칠해진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덕수궁 앞에서부터 시작한 도심문화 워킹체험은 가회동 31번지에서 바라본 카메라 앵글 속에서 막을 내렸다. 시간의 덧칠에도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문화예술 현장에 있는 우리의 어깨가 저녁노을만큼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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