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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토리텔링

방미영의 유비쿼터스아트 - 문화예술계의 논객!!

by 청문단 2009. 5. 12.

 



유비쿼터스 시대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위기설은 유비쿼터스 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공감하게 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대니얼 벨은 인류문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으로 정치.
경제. 예술을 꼽았다. 특히 예술이 가장 상위에 있다고 역설한 바 있지만 벨의 정의는
이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사회 전체 기반이 경제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가치판단은 경제논리에 따라 변하는데 문화예술적 가치를 경제 논리에 편중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점에서는 많은 부분 그렇다는 견해를 보였다. 즉, 경제적 가치에 따라 예술이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는 가는 현장 예술인들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IT기술의 대변혁으로 경제의 모든 부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그 축이 이동되고 있는 현상에서, 인간의 지식과 커뮤니케이션도 정보라는 형태로 욕구가 변환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무한의 속도와 무한의 공간에 대한 대중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점이 유비쿼터스아트의 출발선상일 것이다.

즉, ‘Ubiquitous’ 에서의 예술의 진위를 어떻게 가릴 것인가 라는 것이 앞으로 예술계의 논객이 될 것이 뚜렷하다. 다시 말해 수동카메라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작가의 작품이 ‘Ubiquitous art’로 옮겨지면서 원판사진에 변형이 가해지고 미화되는 부분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로봇이 그려내는 예술을 기술로 보아야 하는지 아트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혹자들은 예술가들의 뜨거운 심장과 숨결이 깃들어야 진정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조만간 ‘Ubiquitous art’ 에서도 냄새와 맛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예측을 불러일으키고 있기에 그것 또한 한계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사이버예술가를 창조자라고 볼 것인가 소통자라고 볼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토론과 정의가 필요한 유비쿼터스아트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