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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작가 방미영 - 반대가 성공한 역사 책 속의 이야기

by 청문단 2010. 1. 23.

이 글은 반대가 성공한 역사 책 속에 나오는 글이다... 지금은 버즈두바이 빌딩으로 초고층의 아성을 뺴앗겼지만
당시 우리 기술로 건설하기 힘든 프로젝트라는 우려를 무릅쓰고 성사시킨 성공신화적 건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건설 과정을 소개해본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동남아의 자긍심으로 우뚝 선 페트로나스트윈타워

 

개혁에 맞선 국가 비전 프로젝트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말레이시아가 2020 년 선진국 진입을 위해 '비전 2020'슬로건하에 국가 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대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자긍심은 지금도 대단하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로 인해 명품 도시가 된 콸라룸푸르! 그러나 당시 명품 도시를 만들기위한 말레이시아의 야심은 곳곳에서 제동이 걸린다. 1997년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 외환 위기가 몰아 닥칠 때, 말레이시아에도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가 몰아 닥쳤다. 더욱이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와 안와르 이브라힘 (안와르 이브라힘) 간의 정치적 대립은 말레이시아에 몰아닥친 경제 위기를 한층 혼란에 휩싸이게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는 집권 여당인 암노 (통일 말레이 국민 조직)의 부총 재인 무함마드 타입이 1996 년 크리스마스 전날 현찰을 유출한 혐의로 호주 공항에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 타입의 정치 행로에 제동이 걸리고, 마하티르도 정치적 변화를 맞는 계기가되었다.  결국 무함마드 타입은 말레이시아의 13 주에서 가장 부유한주의 하나인 슬랑고르 주수상 자리를 내놓 는다 개. 이를 기점으로 암노 내 정치 구도의 변화가 일어나게되는데, 암노 내부에는 마하티르 수상과 그의 후계자로 알려진 안와르 이브라힘의 양대 구도가 정립되어 있었다. 안와르 이브라힘 부수상은 평소 마하티르 수상이 아들로 여길만큼 각별한 사이 였으나, 1997 년 7 금융 위기 발생 이후 두 사람 간에는 위기에 대한 분석과 처방에서부터 대 서방 대응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 숱한 갈등을 빚었다. 마하티르가 위기의 원인을 서방 투자가에게 돌리면서 수구적이라고 비칠 정도로 민족주의적이며 독선적으로 행동했다면, 안와르는 내부의 정치 · 경제 구조와 정책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마하티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합리적이란 평을 들었다. 안와르는 마하티르를 향해 서둘러 개혁하지 않으면 인도네시아의 수하 티르 전 대통령을 답습하게된다는 강한 경고를하며 마하티르를 겨냥했지만,이 둘간의 권력 암투는 자문 기구인 UMNO 연례 총회 결과 마하티르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마하티르가 안와르의 개혁에 휘몰릴 것 같던 정세를 뚫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에 u - 시티 붐이 일고있는 가운데 말레이시아의 '2020 말레이시아 비전 '이라는 국가적 슬로건을 내걸고 선진국 대열에서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 이다.그러나 당시 국민 소득 3,000의 말레이시아 경제 여건으로 비춰볼 때 2020 말레이시아 비전을위한 프로젝트 수행은 어느 누구도 마하티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달러. 개혁의 선두에 선 안와르 이브라힘까지도 말레이시아의 경제력으로는 해낼 수없는 프로젝트라며 마하티르의 독선적인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티르는 인접국 작은 거인인 싱가포르의 눈부신 발전을 눈여겨보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우리나라에도 수차례 방문, 경제 개발 5 개년 계획과 경부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등 개발 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터라 장기 집권에 따른 불식의 돌파구로 '비전 2020'프로젝트를 추진 하였다. 

마하티르 수상은 "찌든 가난에서 백성을 살려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하고, 개발을 완료하고 나중에 내가 죽은 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도 좋다."에 통치 철학을 표명하며 '비전 2020'는 나라의 모든 총력을 기울일 것을 표방 하였다.이때 마하티르가 내세운 '비전 2020'프로젝트는 초대형 멀티미디어 단지 (멀티미디어 슈퍼 코리 / MSC와) 건설, 콸라룸푸르 국제 공항 (쿠알라룸푸르 국제 공항 / KLIA) 건설, 콸라룸푸르 시티 센터 (쿠알라룸푸르 시티 센터 / 밤문화 유흥) 건설, 말레이 - 태국 연륙교 (말레이시아, 태국 Landbridge) 공사, 말레이 - 싱가포르 제 2 대교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두번째 건널목) 가설 공사, 푸트 라 자야 (Putrajaya : 신수도) 이전 공사, 경전철 [라이트 레일 교통 (LRT) Ⅰ과 Ⅱ] 공사, 라크얏 플라자 (광장 Rakyat) 신축 등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말레이시아가 농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탈피, 2020 년 선진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도시 기반 시설 공사들이다. 그러나 1997 년 불어닥친 경기 침체로 개혁의 추진 속도가 늦춰지거나 추진 계획에 차질을 빚어 북부 국제 공항 공사, 바쿤 댐 공사, 고속도로 공사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건립은 마하티르 모하메드가 '비전 2020'의 가장 주된 사업으로 착수한 프로젝트로, 수도 콸라룸푸르의 자존심처럼 하늘을 향해 연일 그 모습을 달리 드러냈다.

 


도전만이 발전이다!

콸라룸푸르 시티 센터 프로젝트 (밤문화 유흥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요소로 개발된 88 높이의이 타워 명칭은 이곳에 입주해있는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 회사 페트로나스 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층. 밤문화 유흥 프로젝트는 콸라룸푸르의 골든 트라이앵글 중앙부에 경마장이었던 셀랑가 터프 클럽 100의 잔디밭에 건설되었다 에이크. 50의 땅은 열대 공원으로, 에이크 다른 50 에이크의 땅은 상업 지역으로 개발되었다.

파리의 에펠 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도시를 상징 하듯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역시 콸라룸푸르의 새로운 상징이되었다. 한반도의 1.5 배 면적에 약 2,200 만 명의 인구를 가진 13 개주의 연방 국가 말레이시아가 경제 규모에 비하면 엄두도 못 낼 세계 최고층 건물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세워 세계 초고층 빌딩의 중심축을 동아시아로 옮기겠다는 마하티르 수상의 야심 은 세계의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0 만에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동남아에 세워 졌기 때문이다.지하 6 층, 지상 88 층, 452m의 높이, 연면 적은 21 만 3,750 ㎡이며, 공사 금액은 약 2 억 3,000 만 달러 (한화 2760 억 원)가 들어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당시 국제 현상 설계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세자르 펠리 (세사 Pelli)와 어소 시에이츠 사에 의해 설계된 작품이다. 세자르 펠리는 9.11로 무너진 세계 무역 센터를 설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이다 .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설계 당시 세자르 펠리는 1,900 명에 이르는 회교도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성장을 대변하는 상징적 외형을 강조 하였다 만. 세자르 펠리는 말레이시아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여 12 별 모양의 외형을 제안했으나, 마하티르 총리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8 각별을 채택하도록 하였다 각. 세자르 펠리는 마하티르 수상의 요청에 따라 평면 계획을 원과 사각형이 번갈아 표현되는 별 모양으로 구성하고, 다각형 외부 벽체 모양도 같은 문양을 반복함으로써 회교적 성격을 강조 하였다.

동남아 주요 거점을 목표로 말레이시아 정부의 개발 계획이 발표된 이래, 말레이시아에는 세계 유수의 건설 업체들이 세운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말레이시아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수천 개의 자국 기업을 진출 시키며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1996 년 한국의 건설 기술자들이 말레이시아가 더 이상 일본의 독무대가 아님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시공사 입찰은 여느 입찰과 마찬가지로 1 차 관문인 입찰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했다. 당시 입찰 자격은 최소 2 개사 이상의 조인트 벤처 형태로 참여해야하고,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건설 방식인 철근 콘크리트 형태로 50 층 이상의 건물을 완공한 실적이 있어야했다.

당시 삼성으로는 남대문의 26 삼성 생명 사옥 건설이 초고층 건물을 지어본 경험의 전부였다 층짜리. 다급해진 삼성 건설은 55 삼성동 무역 센터를 시공한 경험이있는 극동 건설과 손을 잡았다 층의. 그러나 무역 센터는 철골 구조물 이었기에 철근 콘크리트 건설 실적이라는 자격 심사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고심 끝에 삼성 건설과 극동 건설 조인트 벤처는 정면 승부수를 던졌다. 국내 건설 업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삼성 건설이 경험도없이 해외 수주를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불가능 성은 없었다. 우리 기술진이 입찰 자격 심사에서 1 통과하는 기염을 토하며,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시공 업체로 선정됐다 위로. 이 소식은 뒷짐만지고 있던 국내 건설 업계에도 세계로 눈을 돌리는 자극제가되었다.


최고의 기술력


철근 콘크리트 구조 물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설계한 세자르 펠리는 타워가 갖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8 각별 설계에 스카이 브리지와 첨탑 등의 특수 구조물 등 여러 가지 디자인적인 요소를 첨가, 시공사의 초고층에 대한 최고의 기술을 요했다.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두 개의 건물을 대칭으로 연결하는 것도 있지만, 상부로 올라가면서 두 건물이 6 단계로 좁아 지도록 설계되어 타워의 중심을 강조하고있다는 검이다. 건물은 상부로 갈수록 바람의 하중을 부담해야하였으며 연약한 기초 지반 공법, 스카이 브리지가 난관이었다. 지상 175m 높이의 41 층과 42 걸쳐 두 빌딩 사이를 스카이 브리지로 연결해 양쪽 건물의 흔들림이 없도록 하였다 층에. 삼성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국내 건설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무게 800 톤가량의 스카이 브리지를 지상에서 조립, 유압 펌프를 통해 지상 175m까지 통째로 들어올리는 '리프트 업'이라 불리는 첨단 공법을 적용 하였다. 이 거대한 구조체는 국내에서 제조되어 각 부분이 말레이시아로 운송되었다.

세계 건축 사상 이러한 크기의 구조물을 지상 177m의 높이에 설치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스카이 브리지를 올리기 40 일 전, 국내에서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한국 건설 기업들은 부실 공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미심쩍어하던 감리 업체는 삼성이 제안한 공법을 더욱 불신하게되었다. 그러나 삼성은 이에 굴하지 않고 스카이 브리지 설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보여 주어 발주처를 직접 설득 해냈다. 스카이 브리지를 올리는 작업은 말레이시아 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시작되었다. 숨을 죽이고 진행된 작업, 마침내 한치의 오차도없이 스카이 브리지는 리프팅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세계 최고 177m의 높이에 설치된 스카이 브리지 공사, 그 성공 뒤에는 한국 기술자들의 열정이 있었다.

스카이 브리지는 건물의 상층부와 하층부를 나누는 중심에 위치한 41 층과 42 스카이 로비를 연결해 식당, 회의실 등 양 타워의 공공 시설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비상시에는 대피 통로로도 활용된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건설의 또 다른 기술의 개가는 콘크리트 재료에 있었다. 페트리 나스 트윈 타워의 외형은 언뜻 보면 금속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콘크리트 건물로, 외벽만 스테인리스 강과 유리로 장식했다. 지상부터 6 층까지는 콸라룸푸르 최대의 상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한쪽에 페트로나스 본사가있다. 초고층 분야에 철골조가 아닌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적용한 것이다. 실제 말레이시아에는 철광석보다는 석회석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선택의 이유도 있었 겠지만 구조 설계와 시공 기술의 또 다른 개가가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 현지 업체들의 콘크리트 제조 기술은 한 단계 도약 하였다. 실제 종전보다 평균 강도가 3 배 이상 증가하여 건축 재료의 절약과 실내 공간의 확장을 가져 옴으로써 엄청난 기술적 성과와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현지 업체들의 선진 기술 이전 효과 또한 경제적 이익 못지 않게 말레이시아의 건설 분야에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었다. 설계, 시공, 건축 재료 생산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선진 업체들과 컨소시엄 방식으로 공동 수행함으로써 최단 기간 내에 기술 수준이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의 하늘을 끌어내린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세워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이 건물이 보여주는 위풍당당함은 그 높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고층 경험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하나하나 배워 가며 공사에 매달린 한국 기술자들의 투혼과 열정이 타워 곳곳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대결


한일 간의 대결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두 나라 국민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2 관 (정면에서 왼쪽)은 삼성 건설이, 다른 한쪽 타워는 일본의하자 마사가 건설 하였다. 일본의 하사마 건설은 한국의 수풍 댐을 지은 100 년 역사를 가진 건설 업체로서 1973 년 말레이시아에 진출했다. 말레이시아 진출 경력 3 삼성 건설과 한일 간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선의의 경쟁에 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년의. 마하티르 수상은 한일 간의 감정을 알았는지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조기 준공을 요청,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한일 간 대결에서는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우리의 민족 감정이 있지만 삼성 건설로서는 공동 시공 사인 일본보다 35 일 늦게 착공한 상황이었고, 정상적인 스케줄 대로라면 일본을 따라잡기 는커녕 예정된 공기도 맞추기 힘든 상황이었다. 현장에서는 공기 단축을위한 갖가지 아이디어 회의가 연일 계속되었다. 회의 결과 미리 철근을 조립해 그대로 건물 위로 옮기는 방식이 집중 논의되었다. 이 방식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구조물의 품질 향상에도 큰 역할을한다는 판단을 내리게했다.
말 그대로 공기 단축은 하루 24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바쁜 시공 일정은 시공 현장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발주처나 감리 회사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12 개 국가에서 참여한 현장 노동자들의 언어적 ·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공사 이외의 일로 한 층에 평균 3 ~ 4 일 소요되는 공기를 맞추려면 콘크리트를 빨리 굳게하고, 고층까지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기술이 핵심이었다. 보통 하루가 걸리는 양생 시간을 10 시간으로 단축했고, 고압력 펌프를 통해 575m까지 한 번에 콘크리트를 쏘아올리는 기술을 적용했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일본보다 먼저 끝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직접 쏘아올리는 기술이었다. 심리전이 작용한 것일까, 삼성 건설은 말레이시아가 제시한 33 개월의 공기를 6 개월이나 단축하여 27 개월 만에 공사 를 마쳤다. 세계 건설사에 기록될만한 위업을 이룬 한국의 기술진들은 공사 막판을 향해 더욱 치열하게 내달았다. 마지막 유종의 미를 일본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5 년 12 월 2 일 공사 21 개월째, 역사적인 마지막 타설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페트로나스트읜 타워 88 층 공사 현장에 전 기술자들이 모여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직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만 눈이 집중되었다. 두 대의 타워 크레인을 통해 이뤄진 콘크리트 타설 작업 2 시간 만에 마침내 88 층에 마지막 콘크리트가 부어졌다. '높이 452m (첨탑 포함), 88 층'의 당시 세계 최고층 건물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일본보다 2 시간 16 분 빠른 기록이었다. 모두들 해냈다는 뭉클함에 눈시울이 붉어진 채 부둥켜 안았다. 최선을 다하여 이룩한 승리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우리 기술자들은이 여세를 몰아 타워의 최상층을 장식하는 첨탑 공사도 일본보다 1 주일 먼저 마무리 해냈다. 덕분에 단축 시공의 대가로 1 만 5,000 달러의 클레임분 비용을 돌려받는 기분 좋은 일이 이어졌다.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자신감


세계의 하늘을 끌어내린 세계 최고층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2003 년 10 월 17 일 타이베이 101에 초고층의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사랑 받았다. 물론 초고층 쌍둥이 건물로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유일하다.
마하티르 수상은 정책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설립을 시작으로 '의 비전 말레이시아 2020'의 야심 찬 계획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있다는 자신감을 말레이시아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 마하티르 수상은 결단력과 미래를 보는 지도자의 통찰력만이 국가를 발전시킬 수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우리 건설 역사에있어서도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할 수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 그리고 결속력 등을 심어 주었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27개월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는 바로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며, 그 자신감을 무기로 우리 산업 역군들은 지금 온 세계 시장을 힘차게 질주하고있는 것이다.